철학(Philosophy)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통찰에 대한 사랑)에서 기원하였는데, 여기서 통찰은 평범한 삶에서의 쓰이는 지식이 아닌 자신과 그것을 에워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뜻한다. 예를 들자면 인생관, 가치관 등이 있다. 이런 통상적인 뜻으로서의 철학은 어느 나라에서나 예전부터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사실 학문 자체를 논하는 의미였고 고전적으로는 이 세상과 사람, 사물, 현상의 가치와 근본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전체적인 연구를 뜻했다. 동양의 서양문명이 들어온 이후 철학은 전체적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에 기반하는 서양철학 일반을 불리기도 하나 철학 자체는 동, 서양으로 분리하지는 않는다. 이와 더불어 근, 현대 철학은 철학에 토대로 사고인 전제나 문제 명확화, 개념 엄격함, 명제 간 관계 정확성을 이용하여 주제를 논의하는 언어철학이나 논리학 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소피스트의 원뜻은 ‘지혜로운 자’로, 그리스 주변에 흩어져서 활동하던 지방의 현자들이었는데 이들이 아테네로 몰려든 것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다. 아테네는 주변국에 의해 수시로 침략당했으나 특히 페르시아의 위협은 아테네를 거점 삼아 동방으로 확장하는 수준의 큰 문제이기에 전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를 둘러싼 산들은 올리브나무가 아니고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척박한 여건이었고, 이에 따라 육로에서 실패를 경험한 페르시아는 다시 해상으로 침략해 들어왔다. 두 진영이 접한 세계 중 어느 편이 세계 패권을 쟁취하느냐 하는 중요한 전쟁에서 아테네는 다행히 도시를 지키고자 자원한 병사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페르시아로부터 영토를 지켜냈다
바로 이 시기에 소피스트들이 아테네에 몰려든 청년들을 대상으로 활약을 펼친다. 이들의 주 무기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이다. 변화무쌍한 도시 아테네에서 절대적 이데아론이 점점 보수적 가치가 되어가고 있을 때 ‘세상에 절대적으로 올바른 진리란 있을 수 없고 올바른 것은 그것을 정하는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는 소피스트들의 입장은 새로움을 열망하는 젊은이들의 의식을 충족해주었다. 청년들은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던 고르기아스(Gorgias), 프로타고라스 등의 소피스트들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몰려들었으며 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소피스트의 시초인 프로타고라스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는 시대, 문화, 장소마다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주장했으며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며 인간 중심 사상을 강조했다.
고르기아스는 프로타고라스와 함께 1세대 소피스트를 형성한 시칠리아 출신의 소피스트로 어떤 주제를 만나든 능통한 언변 술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고르기아스의 철학은 회의주의로 유명한데, 그는 자신의 저작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자연에 관하여》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인식되지 않는다. 인식되더라도 언어로 전달되거나 해석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통해 “모든 것은 사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염세적인 철학을 기술했다. 그가 언변 술을 연마하기 위해 입에 돌을 물고 몇 달씩 피나는 훈련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가 실전에 임하기 전 어떤 주제에 대해서건 사전에 철저한 말하기 준비했던 노력형 인재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철학은 세상과 사람의 삶에 대한 기본 원리 즉 인간의 본질,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지식, 존재, 가치 그리고 윤리, 논리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실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언어는 프로타고라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철학적 방법이란 체계적 언어, 비판적 토론, 이성적 반론/주장을 포함한다.
소크라테스 전 철학의 탐구 사물은 자연이었다. 이것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라고 하는데 자연을 직접 움직이는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기원전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 철학은 인간의 영혼을 탐구 대상으로 여겼으며, 특히 윤리상 이슈에 연구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이전 철학과 반대되는 연구를 하였고 소크라테스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온다. 이들은 소크라테스 시기 철학의 대상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대상을 같이 연구하여 철학 학문을 정립하였다.
사람은 과연 사물을 어느 정도로 인식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하여, 사람은 이성적 인식에 의해 참된 이치를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R.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론자와 사람의 인식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경험이 요구한다고 인식하여 인간은 경험을 능가한 문제에 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고 하는 J.로크를 비롯한 영국 경험론자가 부딪히게 되었다. I.칸트의 철학은 이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 ·일치하려고 한 것이며, 이 인식이 하나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 문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세철학의 핵심인 숙제가 되었으며, 19세기~20세기에도 철학의 숙제는 기초 과학의 기본부여에 있다고 생각하는 신칸트학파와 말이라는 것을 분석하여 말이 가지는 문법적 형태에 거짓으로 넘어가 우리가 잘못된 생각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숙제라고 생각하는 분석철학도 인식 문제를 철학의 중심적 대상으로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근대철학 가운데는 인식이라는 문제를 철학의 중요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와는 다른 대상을 다루려 했던 철학도 있었다.
근대 초기에 유럽 사회는 ‘화약’, ‘나침반’, ‘인쇄술의 발달’로 역사적으로 심한 변화가 있는 시기이다. 화약은 전쟁 기술의 변화에 기인하여 기사 계급의 위치를 변화시켰다. 나침반에 의해 항해술이 발전하고 유럽에 한정되어 있던 시각을 외부로 향하는 발판이 되었다. 인쇄술의 발전은 작은 인구에 한정되어 있던 학문이 널리 전파함으로써 지식인들을 확대했다. 단절적이고도 배척하던 중세 교회의 통제로부터 역동적인 문화로의 진출이 시작되었고, 유럽의 학문에서도 변화가 발생한다. 인문주의자들에 의한 개인주의적 ‘인간의 재발견’이 강조되고,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에 의해 근대 자연과학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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