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Philosophy)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통찰에 대한 사랑)에서 기원하였는데, 여기서 통찰은 평범한 삶에서의 쓰이는 지식이 아닌 자신과 그것을 에워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뜻한다. 예를 들자면 인생관, 가치관 등이 있다. 이런 통상적인 뜻으로서의 철학은 어느 나라에서나 예전부터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사실 학문 자체를 논하는 의미였고 고전적으로는 이 세상과 사람, 사물, 현상의 가치와 근본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전체적인 연구를 뜻했다. 동양의 서양문명이 들어온 이후 철학은 전체적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에 기반하는 서양철학 일반을 불리기도 하나 철학 자체는 동, 서양으로 분리하지는 않는다. 이와 더불어 근, 현대 철학은 철학에 토대로 사고인 전제나 문제 명확화, 개념 엄격함, 명제 간 관계 정확성을 이용하여 주제를 논의하는 언어철학이나 논리학 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소피스트의 원뜻은 ‘지혜로운 자’로, 그리스 주변에 흩어져서 활동하던 지방의 현자들이었는데 이들이 아테네로 몰려든 것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다. 아테네는 주변국에 의해 수시로 침략당했으나 특히 페르시아의 위협은 아테네를 거점 삼아 동방으로 확장하는 수준의 큰 문제이기에 전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를 둘러싼 산들은 올리브나무가 아니고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척박한 여건이었고, 이에 따라 육로에서 실패를 경험한 페르시아는 다시 해상으로 침략해 들어왔다. 두 진영이 접한 세계 중 어느 편이 세계 패권을 쟁취하느냐 하는 중요한 전쟁에서 아테네는 다행히 도시를 지키고자 자원한 병사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페르시아로부터 영토를 지켜냈다

바로 이 시기에 소피스트들이 아테네에 몰려든 청년들을 대상으로 활약을 펼친다. 이들의 주 무기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이다. 변화무쌍한 도시 아테네에서 절대적 이데아론이 점점 보수적 가치가 되어가고 있을 때 ‘세상에 절대적으로 올바른 진리란 있을 수 없고 올바른 것은 그것을 정하는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는 소피스트들의 입장은 새로움을 열망하는 젊은이들의 의식을 충족해주었다. 청년들은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던 고르기아스(Gorgias), 프로타고라스 등의 소피스트들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몰려들었으며 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소피스트의 시초인 프로타고라스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는 시대, 문화, 장소마다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주장했으며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며 인간 중심 사상을 강조했다.

고르기아스는 프로타고라스와 함께 1세대 소피스트를 형성한 시칠리아 출신의 소피스트로 어떤 주제를 만나든 능통한 언변 술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고르기아스의 철학은 회의주의로 유명한데, 그는 자신의 저작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자연에 관하여》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인식되지 않는다. 인식되더라도 언어로 전달되거나 해석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통해 “모든 것은 사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염세적인 철학을 기술했다. 그가 언변 술을 연마하기 위해 입에 돌을 물고 몇 달씩 피나는 훈련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가 실전에 임하기 전 어떤 주제에 대해서건 사전에 철저한 말하기 준비했던 노력형 인재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철학은 세상과 사람의 삶에 대한 기본 원리 즉 인간의 본질,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지식, 존재, 가치 그리고 윤리, 논리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실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언어는 프로타고라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철학적 방법이란 체계적 언어, 비판적 토론, 이성적 반론/주장을 포함한다.

소크라테스 전 철학의 탐구 사물은 자연이었다. 이것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라고 하는데 자연을 직접 움직이는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기원전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 철학은 인간의 영혼을 탐구 대상으로 여겼으며, 특히 윤리상 이슈에 연구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이전 철학과 반대되는 연구를 하였고 소크라테스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온다. 이들은 소크라테스 시기 철학의 대상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대상을 같이 연구하여 철학 학문을 정립하였다.

사람은 과연 사물을 어느 정도로 인식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하여, 사람은 이성적 인식에 의해 참된 이치를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R.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론자와 사람의 인식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경험이 요구한다고 인식하여 인간은 경험을 능가한 문제에 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고 하는 J.로크를 비롯한 영국 경험론자가 부딪히게 되었다. I.칸트의 철학은 이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 ·일치하려고 한 것이며, 이 인식이 하나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 문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세철학의 핵심인 숙제가 되었으며, 19세기~20세기에도 철학의 숙제는 기초 과학의 기본부여에 있다고 생각하는 신칸트학파와 말이라는 것을 분석하여 말이 가지는 문법적 형태에 거짓으로 넘어가 우리가 잘못된 생각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숙제라고 생각하는 분석철학도 인식 문제를 철학의 중심적 대상으로 고려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근대철학 가운데는 인식이라는 문제를 철학의 중요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와는 다른 대상을 다루려 했던 철학도 있었다.

근대 초기에 유럽 사회는 ‘화약’, ‘나침반’, ‘인쇄술의 발달’로 역사적으로 심한 변화가 있는 시기이다. 화약은 전쟁 기술의 변화에 기인하여 기사 계급의 위치를 변화시켰다. 나침반에 의해 항해술이 발전하고 유럽에 한정되어 있던 시각을 외부로 향하는 발판이 되었다. 인쇄술의 발전은 작은 인구에 한정되어 있던 학문이 널리 전파함으로써 지식인들을 확대했다. 단절적이고도 배척하던 중세 교회의 통제로부터 역동적인 문화로의 진출이 시작되었고, 유럽의 학문에서도 변화가 발생한다. 인문주의자들에 의한 개인주의적 ‘인간의 재발견’이 강조되고,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에 의해 근대 자연과학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리(플라톤)  (0) 2023.01.11
스피토자  (0) 2023.01.09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  (0) 2023.01.07

플라톤은 명실공히 서양 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자다. 그는 왕족 가문의 아버지와 당대 막강한 정치 가문 ‘솔론’ 집안의 어머니를 둔 화려한 출생 배경을 시작으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라는 압도적 프로필을 자랑한다. 게다가 세계 최초 고등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를 아테네에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는 플라톤의 이런 압도적 영향력을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정리했다. 그의 말처럼 플라톤의 사상을 접하고 나면 다른 철학자들의 윤리, 정치, 이념 등등에 대한 각각의 주장에서 신기하게도 플라톤 사상이 오버랩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플라톤의 사상을 먼저 살펴보자.

우리는 철학 이론 곳곳에서 플라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의 이름도 친숙하지만, 정작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이데아’ 정도 외에 딱히 그에 대해 아는 게 없기도 하다. 아테네 명문가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으나 존경하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일로 정치에 환멸을 느낀 플라톤은 당시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의 성공을 위한 수순인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이 세상의 ‘정의’에 몰두한다. 이후 지중해 연안을 떠돌며 키레네학파의 쾌락에 대한 절제적 해석과 피타고라스 학파의 공동체 정신 등 다양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 플라톤 자신의 철학을 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이데아론 이다.

플라톤의 대표적 사상인 이데아론은 다른 말로 원형 이론 또는 형상 이론이라고도 한다. 그의 이데아론에 따르면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존재들은 모두 완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원형 세계의 복사체다. 즉 완전한 원본, 원형의 세계가 분명 존재하고 현실은 그 원본 세계를 가정한 채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삼각형을 그리거나 조각상을 만들 때 가정하는 절대적 원형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 손을 거쳐서 나오는 삼각형과 조각상 등은 그 원형과 닮았을 뿐 절대 원형은 아니다. 만약 기계로 똑같이 찍어낸다 해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찍혀 나오는 삼각형조차 자세히 살펴보면 진하기와 굵기 등에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완전한 직선, 완전한 삼각형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며 그 존재를 염두에 두고 계산도 하고 현실에 적용한다. 이렇듯 현실에서 원형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존재를 인정하고 있기에, 결국 우리는 모두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지지하는 이상주의자인 셈이다.

플라톤은 이 원형을 이루는 궁극적 원리를 ‘선의 이데아’로 보았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진리’의 의미와 가깝다. 선의 이데아는 진리가 선한 원리 속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내내 이야기하던 것과 같다. 플라톤은 인간이 이성의 단련에 의해 그 원형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보았고, 인간을 순수한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영혼과 감각적 본능을 추구하는 육체가 결합한 이원적 존재로 간주했다.

플라톤 이론의 정수가 녹아 있는 총 10권으로 구성된 저서 《국가》에서 그는 인간 이성의 덕을 ‘지혜’, 정욕의 덕을 ‘절제’, 이성의 명령에 따라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의 덕을 ‘용기’라고 적었다. 그리고 ‘올바름(또는 정의)’이란 여러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할 때의 상태를 말한다. 그는 이러한 덕론을 통해 인간 개인의 윤리학을 논했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은 개인이 덕을 달성하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사회 전체의 윤리설을 주장했다. 그것이 ‘국가(Politeia)’론이다. 그는 사회 전체가 정의를 실현한 이상적인 상태를 최고의 국가로 보았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이후 보게 될 홉스, 헤겔 등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의 근간이 되어 영향을 미친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친 아테네의 전쟁을 겪으며 이상적인 국가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플라톤은 이상 국가의 형태를 실현하고자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귀족 디온의 권고를 받아들여 시칠리아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초청에 응했다. 그러나 그가 이상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통치자의 요건을 저버린 디오니시오스 1세의 과두정치에 크게 실망해 언쟁을 벌이다 디오니시오스 1세의 분노를 사서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건립하고 20년간 묵묵히 제자 양성에 힘쓰며 저작에 몰두했다. 《향연》 《파이돈》 《국가》 《파이드로스》 등 그의 주요 저술이 이때 이루어졌고, 오늘날 대학교(아카데미)의 전신인 이 학원은 종교적 압력으로 폐교되는 529년까지 그 명성을 이어갔다.

BC 367년 디오니시오스 1세가 죽자 디온은 플라톤에게 조카 디오니시오스 2세의 교육을 부탁했다. 이에 플라톤은 다시 시칠리아로 향했으나 이미 시칠리아는 정치적 파벌로 분열된 상태였다. 게다가 디온 마저 추방된 상황이어서 그는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씁쓸히 아테네로 돌아와야 했다. 《국가》의 공고한 철인통치 사상은 결국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했고, 이후 플라톤은 저작에 몰두하다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우리 삶에 플라톤의 공헌이 없는 부분이 있을까? 사회제도, 정치, 예술, 윤리 등 모든 영역에 실로 방대한 업적을 남긴 플라톤이지만 특히 교육 부문에서 그의 혜안은 더욱 존경스럽다. 플라톤의 교육은 평생교육의 관점이며, 출생부터 50세 이후까지를 나이별로 구분해 단계마다 언제 무엇을 익히고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세세하게 구분해두었다. 그는 3세 이전까지의 유아기는 성격 형성에 중요한 시기이므로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동기에는 이성이 성숙하지 않았기에 주로 음악이나 스포츠 등에 중점을 두고 또래와 어울리며 사회성 발달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청년기가 되면 최고 국면인 이성이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해 이성적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으므로 사고에 도움이 되는 학문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50세 이후부터는 평생토록 궁극적으로 선의 이데아를 연구하고 정치를 맡으며 후진을 교육하고 가치 있는 노년을 보낼 것을 권고했다.

플라톤이 아카데메이아에서 실행한 교육 방법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실행했던 방법이다. 이는 소피스트들의 논쟁술·궤변술에 빠지는 대화법이 아닌 자기성찰과 진리 탐구를 위한 것으로서 문자를 통한 교육이 아닌 살아있는 질문과 대화를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교육 방법을 통해서 그가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한 가르침은 소크라테스가 생전에 보여준 선의 이데아, 즉 진리를 깨닫는 방법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삶이었을 것이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의 탐구  (0) 2023.01.11
스피토자  (0) 2023.01.09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  (0) 2023.01.07

스피노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가 주장하는 ' 자체로' 존재의 질서를 만물이 신의 통치에 기대고 완성하고자 했고, 데카르트는 아퀴나스가 엄격히 금지했던 존재론적 증명을 '유리에게'라는 방법은 통해 복원한다. 둘 사이에서 앓고 있던 데카르트의 냉가슴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묘책 마련에 만전을 기한다.

다음과 같이 논증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좋겠다. ‘신이 실존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그 자체로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신이 실존한다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불확실한 전제들로부터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결론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소 함축적인 이 구절을 풀어 쓰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아무리 맑고 또렷한 관념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근원을 모르면 그것은 의심할 있다. 이 의심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신의 실존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입장에 따르자면 신의 실존은 ‘그 자체로’ 알려질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이 추론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다 한들 그 전제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결국 나의 관념도 신의 인식도 확실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이것은 사실상 데카르트의 순환 논증에 대한 지적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를 대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이러한 난점을 제거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대답한다. 신이 실존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든 다른 것에 의해서든 결코 알려질 수 없다 하더라도, 신의 실존을 추론할 수 있었던 모든 전제에 최대한 정확하게 집중한다면, 우리는 이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자신이 데카르트를 대변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데카르트와 다르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근원을 모르는 한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 없고 확실한 결과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추론 과정에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원인에 도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스피노자는 여기서 우리가 추론 과정에 집중하기만 한다면 신의 실존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못 박고 있다. 순환 논증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의 첫 부분에서부터 그는 데카르트와 상반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런 답변이 더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킬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내 더욱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이런 대답이 사람들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다른 것을 제시하겠다. 우리가 ‘신이 최고로 참되다’를 긍정하게 만드는, 신에 대해 맑고 또렷한 관념을 가지지 않는 한, 아무리 그 증명에 제대로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실존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물에 관하여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모든 것으로부터 명백한바 신은 우리가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과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똑같이 생각하기 쉽도록 우리를 설계해놓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그가 가장 참되다고 단언하도록 강제하는, 신의 개념을 형성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문제 전체의 핵심이 바로 여기서 전복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런 관념을 형성해낸 그때… 의심의 근거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에 대한 관념 또한 명백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획득했든 이 관념을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이것은 모든 의심을 제거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신의 ‘실존’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신의 ‘관념’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신에 대해 맑고 또렷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 내용은 신이 가장 참되며 우리 본성의 지은이, 우리가 우리의 실존 이외의 다른 진리들, 예컨대 수학적 진리를 의심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신에 대해 이러한 맑고 또렷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신에 대해 맑고 또렷한 관념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참으로 인식한 모든 것을 다시 의심할 필요가 없다. 아니 의심할 수 없다. 문제의 중점이 ‘우리가 신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로부터 ‘우리가 신의 관념을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로 건너가고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든 추론에 의해서든 알려지지 않는 신의 관념을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신의 관념을 형성해낸다efformare. 다시 말해 우리가 신의 관념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신의 관념이 외부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그것을 형성해내기 때문이다.

(2) 참된 방법—베이컨의 《신기관》 vs 스피노자의 《지성교정론》

진정한 방법은 순수 지성, 순수 지성의 본성, 그리고 그 법칙들의 인식일 뿐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상과 지성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적어도 방법이 요청하는 정도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본성을 제일 원인을 통해서 인식할 필요는 없으며, 베이컨의 방식대로 정신이나 지각들에 대해 짧게 묘사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스피노자는 《지성교정론》에서부터 맑고 또렷한 관념은 모두 참이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결코 의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견지하고 있었다. 그는 데카르트처럼 나 자신을 속여 잠깐 이런 의견이 거짓되고 공상적이라고 가정하는 일조차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런 입장이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에서도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우리는 앞서 확인했다. “최고의 사기꾼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신에 관한 이러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고,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기만 하면 우리가 맑고 또렷한 관념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의심은 제거되기에 충분하다. 그는 지성 능력에 대해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성은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스피노자의 방법에 관한 탐구가 앞의 편지에서 회고되고 있듯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 아래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흔적이 《지성교정론》 곳곳에 남았다는 사실이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연역법에 기초한 논리학을 학문의 방법론으로 채택한 것을 비판하고 실험에 기초한 귀납법을 참된 학문의 방법론이라 주창함으로써 데카르트에 앞서 근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러한 방법에 대한 반성은 《신기관 Novum Organum》에 다양한 아포리즘의 형태로 남아 있다. 물론 중세 스콜라 철학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논리적으로 삼는 일은 근대 초기에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며, 베이컨은 물론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는 이 철학적 전선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이들이 모두 철학적 방법론에 몰두했던 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학을 고안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더구나 이러한 노력은 칸트의 선험론적 논리학과 헤겔의 변증법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새로운 논리학에 대한 탐구는 근대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 역사 그 자체였다.

《신기관》을 읽어본 독자라면, 베이컨이 얼마나 방법의 문제에 천착했는지, 나아가 얼마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혐오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방법은 실행하기는 좀 어렵지만 설명하기는 쉽다… 사태가 워낙 악화하여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논리학으로는 어림도 없다. 정신은 매일매일의 생활 습관 때문에 그릇된 이설에 오염되어 있으며, 심지어 허망한 우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므로 저 논리학이라는 학문은 사태를 해결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진리를 밝히기보다는 오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을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과 구원은 정신의 작업 전체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정신을 그냥 방치하지 말고 처음부터 끊임없이 지도해서, 마치 기계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기계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을 아무런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달려들 경우 아무리 열심히 공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도 오직 정신의 힘만 가지고 덤벼들어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가 정신과 방법에 대하여 맨손과 도구의 비유를 드는 것은 다음에서도 반복된다. “맨손으로는, 또한 그냥 방치된 지성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손도 도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듯이, 지성도 도구가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도구를 쓰면 손의 활동이 증진되거나 규제되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도 도구를 사용하면 지성이 촉진되거나 보호된다. 여기서 베이컨은 우리의 정신이 마치 맨손과 같아 도구 없이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지성 능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의 탐구  (0) 2023.01.11
진리(플라톤)  (0) 2023.01.11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  (0) 2023.01.07

데카르트의 신 증명이 담고 있는 순환 논증 문제는 기존의 연구자들에게 주로 논리적 순환 문제로 다루어졌다. 순환 논증은 증명되어야 할 것이 이미 그 증명에 전제된 증명을 뜻한다. 알다시피 논증의 기본 순서는 전제가 결론보다 먼저 알려져 있어야 하고 결론이 전제에 기대어 있으므로 전제가 결론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저들의 주장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바로 이런 논리적 악순환에 걸려들었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로부터 내가 맑고 또렷하게 지각하는 것은 모두 참이다라는 결론을 내린 뒤 이 결론을 전제 삼아 신은 실존한다고 결론짓는다. 문제는 앞의 전제가 마지막 결론에 의해 보장받는다는 논증이 이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신의 실존은 이미 내 생각으로부터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신의 실존에 의해 보장받는다. 그러나 신의 실존은 내 생각으로부터 증명되었다. 그러나이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내 생각과 신의 실존 사이에서 일종의 무한궤도를 그리게 되고 어떤 것이 전제인지 어떤 것이 결론인지 확정 지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논증 규칙의 위반이고 이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이 말하는 논리적 악순환이란 대개 이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관례에 따르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철학이 운명적으로 떠안고 있는 (앞으로 다룰) 두 가지 근본적 방법론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쪽을 선택할 만한 근거도, 그렇다고 둘을 통합할 만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이 사이에서 끝없이 맴돌았다. 저 논리적 순환은 사실상 이러한 형이상학적 방법론상의 순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여러 종의 철학사 책이나 스피노자 관련 연구서에서 만날 수 있는, 데카르트에 대한 비판적 관점들의 요체이기도 하다. 관례에 따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짧지 않은 에움길을 걸을 것이며, 이 길은 방법적 회의에 관한 재고로부터 시작된다. 에우도수스: 내 말에 주의해보라,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당신을 더 멀리 인도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확고부동한 한점으로서의 이 보편적인 의심으로부터 신에 대한 인식, 당신 자신에 대한 인식 및 이 세계 속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을 끌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폴리안데르 :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약속이다. 그런 것이 이루어진다면, 당신이 요구하는 대로 따르는 것은 분명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스피노자가 이 책의 서론에서 증언하고 있듯 데카르트는 의심만을 목표로 삼았던 회의주의자와는 달리, 학문의 확실한 토대를 발견하기 위해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을 감행했다. 데카르트와 회의주의자의 차이점은 데카르트의 이른바 방법적 회의가 의심의 근거를 요구한다는 것이며, 이는 의심 자체가 합리적 근거에 따라 이성적으로 수행되어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의심의 근거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 의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들은 더욱더 참된 것으로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이 근거에 의해 단 한 번이라도 흔들리는 것은 모두 배제하겠다고 작심한 뒤,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들, 즉 감각의 내용, 자연과학 및 수학의 대상, 심지어 신의 본성과 실존까지 흔들어볼 정도로 의심을 강행한다. 그는 이 각각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했기 때문에, 이전에 참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이내 거짓된 것으로 철회해야만 했다. 이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내가 거짓된 것들을 참이라고 여겼던 일은 신이 나를 그렇게 실수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무엇, 예전에 참이라고 긍정했지만, 지금은 거짓이라 부정하고 있는 무엇, 감각하고 상상하는 무엇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의심하기, 긍정하기, 부정하기, 상상하기 등은 모두 내 생각이 이러한 작용을 할 때 드러나는 생각의 모양새이다. 따라서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여러 가지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그러면서 실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떠한 의심의 근거를 통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의심하는 동안에도 나는 의심하고 있는 무엇이며 따라서 나는 실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이 나를 언제나 실수하도록 창조했다 하더라도, 나는 실수할 때마다 실수하고 있는 무엇이고, 따라서 나는 실존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나는 이 정도로 맑고 또렷하게 지각하는 모든 것을 참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실존한다는 것이 아무리 확실하다 하더라도 내가 언제든 속을 수 있는 상황에서 실존한다면, 이것은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기는 잘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자기 실존의 확보가 자기 인식 능력의 확보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여기서 존재의 원리와 인식의 원리는 분리되고 만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라고 종용한다. 내 생각의 능력 또한 나의 실존만큼 확실해야 하며, 그때야 비로소 인식과 실존은 나는 생각한다라는 원리에서 일치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 밖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채 홀로 갇혀 있을 것이다.

내가 밖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물음은 곧 나의 능력에 관한 물음이다. 다시 말해 내가 내 인식을 외부의 사물들로 확장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그것들이 나의 능력에 속하는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나에게 있는 관념의 기원에 관한 물음으로 통한다. 왜냐하면 만일 나에게 있는 관념이 나보다 더 많은 능력을 지닌 것으로부터 왔다면 이 관념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나의 소관으로서 나는 이제 거기로 나가 나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념의 기원을 묻는 것은 내가 나의 관념들에 관하여 세계를 상대로 권리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며, 그런 한에서 이것은 내가 나의 모든 관념들을 나 자신으로부터 연역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연역은 본디 권리의 문제이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의 탐구  (0) 2023.01.11
진리(플라톤)  (0) 2023.01.11
스피토자  (0) 2023.01.09

+ Recent posts